할례는 하나님께서 창세기17장에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상징입니다. 언약의 백성이 새로 태어난 상징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8일 만에 성전으로 가서 할례를 행합니다. 할례는 남자아이의 양피를 베어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길갈에서 여호수아는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남자들이 다 할례를 행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는 할례를 받은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로마서에서 바울은 (롬2: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구약 예레미야 선지자도 부르짖은 적이 있습니다.

(렘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렘6: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렘9:26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 7: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그렇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할례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할례 받은 삶입니다.

귀가 할례를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 경책을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합니다. 입이 할례를 받아서 덕이 되고, 사람을 세우는 복음의 기쁜 소식만 전해야 합니다. 눈이 할례를 받아서 하나님의 창조를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이 할례를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행하는 산제사와 같은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중점이 바로 육신의 표면적인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만 다니지 말고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017년에는 교회만 다니는 성도가 아니라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는 염광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2017.1.29. 갈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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